2049 : 테크노-차이나가 온다.
1. 입춘(立春)
카운트다운이 독특했다. 10, 9, 8, 7......1, 0!
열부터 영까지 차감하는 순이 아니었다. 24, 23...... 스물넷부터 세어나갔다. 우주적 순환을 상징하는 동방의 셈법, 24절기를 상징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24번째로 열리는 동계올림픽이기도 했다. 개막일 또한 서력으로 2월 4일, 동/서를 망라한 ‘24’의 변주가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임인년(壬寅年), 동방의 새봄을 알리는 입춘에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개막하였다. 연두 빛 새싹이 민들레 홀씨가 되어 사방팔방 만방으로 흩날려갔다.
14년 전, 2008년에도 같은 장소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렸다. 개막일은 8월 8일, 오후 8시. 빠빠빠(888=發發發)를 유난히 좋아하는 중국인의 생활 감각을 물씬 살린 날이다. 실제로 개막식은 온통 중국풍이었다. 경제대국, 무역대국으로 재등장한 중국의 굴기를 한껏 발산하는 국가적 이벤트였던 것이다. 과거의 위대한 문명과 찬란한 역사를 복기하는데 연출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공자의 제자가 3천명이나 등장하는 등 화려하고 웅장하며 거대한 인해전술로 자의식 과잉의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이다.
2022년은 사뭇 달랐다. 더 이상 외부로부터 중국을 승인받는데 안달하지 않는다. 이미 G2, 세계를 양분할 만큼의 위상이 확고하다. 과거의 영광을 과시하기보다는 미래의 첨단을 밝히는데 초점을 두었다. “Back to the Future”, 중국이 늘 문명의 중심이었던 오래된 세계로, ‘미래의 역사’로 나아가는 것이다. 즉 2008년 하계올림픽이 중국의 굴기를 보여주었다면, 2022년 동계올림픽은 그 굴기의 본질을 드러내주었다. ‘세계 속의 중국’에서 ‘세계 앞의 중국’으로 진화한 것이다. 과학기술에 기초한 미래국가, ‘테크노-차이나'의 귀환을 선포한 것이다.
그렇다. 아편전쟁 이전까지 중국은 늘 기술대국, 기술 선진국이었다. 인류의 4대 발명품도 모두 made in china, 중국산이다. 그 중 하나인 종이 두루마기가 깔렸던 2008년의 메인스타디움 그라운드에는 2022년 LED 판넬이 설치되었다. 개막식 내내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접목시킨 미래형 연출이 지속된 것이다. AI를 통한 라이브 모션 캡처 기술을 선보이며 600명 사람들의 움직임에 실시간으로 조응하는 데이터 기반 예술을 구현하기도 했다. 오륜기는 드론을 띄워 형상화하였고, 개막식의 백미라는 성화 점화에는 수소에너지를 활용했다. 디지털과 탈탄소라는 미래형 아젠다를 선보인 것이다. 앞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하는 길을, 산업문명 이후 미래문명의 단서를 개막식 곳곳에 뿌려둔 것이다.
중국의 자의식이 세계의식으로 진화하고 과거에서 미래로 시선이 달라지는 동안 미국에서는 ‘Make America Great Again', 'Build Back Better'와 같은 구호가 연거푸 운운되었다. 20세기를 선도했던 진취적인 개척정신과는 상반되게도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복고풍이 만연한 것이다. 트럼프의 ’Again‘과 바이든의 ’Back‘이 가리키는 시대란 명명백백 미국이 압도적 패권을 행사했던 20세기 후반일 법하다. 부지불식간 중국이 미래를 고지하고, 미국이 과거를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 동방과 서방 사이, 과거와 미래 사이 일대 거대한 반전이, 대반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즉 겨울도 다 같은 겨울이 아니라고 하겠다. 지나간 여름과 가을을 반추하는 겨울이 있는가 하면, 새봄을 맞이하는 진취적인 겨울도 있는 법이다. 2022년 2월의 베이징은 분명 후자 쪽이었다. '포스트-웨스트'(Post-West), 신세기와 신세계, 신문명의 봄맞이로 분주하였다.
2. 천외유천(天外有天)
낙차가 뚜렷하다. 시차가 굉장하다. 앞으로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중국에 견주어, 정작 중국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과거에 정박되어 있다. 올림픽을 전후로 선전선동이 난무했다. 소수민족 위구르을 탄압하고 소수지역 홍콩을 억압하며 대만 침공을 호시탐탐한다는 냉전기 이래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서사들이 ‘뉴스’라는 이름으로 널리 울려 퍼졌다. 물론 그런 문제가 없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국지적인 사안들이다. 그리고 그 일각의 이슈 또한 얼마나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그러한 상투적 보도들의 가장 큰 폐해와 패착은 정작 중국 사회에 넓고 깊이 퍼져있는 미래지향적 공기를 전혀 전달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미 소강사회에 진입했다. 우리가 익숙한 어법으로는 중산층 사회가 된 것이다. 문화적 낙관주의가 도도하며, 기업가 정신 또한 충만하다. 도전적이며 모험적이다. 수많은 개척자들이 미답의 프런티어를 열정적으로 찾아 헤맨다. 과학과 공학이 선사하는 미지의 해방적 가능성에 흥분하고 열광하고 있다. 수십 년 간 정부의 프로파간다였던 ‘과학기술은 제1의 생산력이다.’라는 명제가 인민들의 시대정신과 생활감각으로 뿌리내린 것이다. 한때는 실리콘벨리에 정착했던 미국 유학파들 또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으로 되돌아와 치열한 창업 전선에 투신하고 있다. 교육과 기술과 기초과학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중국에서 더 큰 기회가 열리고 있음을 예민하게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세계 최고의 지식과 기술로 중무장한 미래 인재들에게 중국은 (한때 미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무궁무진한 ‘기회의 나라’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열망과 열기는 고스란히 21세기에 태어난 미래 세대들에게도 전파되고 있다. 2021년 상하이에 새로 만들어진 우주 박물관은 수주 전에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관람이 어려울 만큼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몰려든다. 한국의 전체 인구를 능가하는 6천만 중학생들이 국영 텔레비전 CCTV 모니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물리학 강좌에 심취하고 있다. 로켓을 쏘아올리고 우주선을 보내는 것은 물론이요,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고 달을 너머 화성까지도 탐사한다. 우주정거장 톈궁(天宫)부터 화성탐사로버 주룽(祝融)까지, 중국의 고대적 상상력에서 길어올린 한자 신조어들을 외계 곳곳에 새겨 넣고 있는 것이다. 한때 오로지 미국만이 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중국이 못지않게 이루어내고 있으며, 달의 뒷면 착륙 등 일부 영역에서는 미국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역전극에 중국인민들의 자부심과 애국심도 끓어오른다. 1957년의 스푸니크 쇼크에 절치부심, 소련을 역전시켰던 1960년대의 미국이 절로 연상되는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달로 가자는 문샷(Moonshot)의 열망을 지피던 그때 그 시절의 그 달뜬 열기가 오늘날 중국에서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서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는 개척자 정신이 도리어 중국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의 미국 또한 모순이 적지 않았다. 밖으로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비판으로 온세계가 시끄러웠고, 안으로는 흑인민권운동이 폭발하는 등 혼란과 혼돈이 지속되었다. 그러함에도 1960년대의 미국을 회고하면 낙관적 분위기가 주도했음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020년대의 중국이 바로 그러하다. 안으로 문제가 없지 않다. 밖으로는 소음과 잡음이 더욱 심하다. 그러함에도 미래에 대한 열망과 결합되어 표출되고 있는 낙관주의야말로 사회의 주선율이라 하겠다.
게다가 세계의 중심, 지구의 중원으로 복귀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미지의 세계, 지구 밖 우주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일대일로를 통한 실크로드의 현대적 복원으로 대항해 시대를 역전시키는 것에 머물지 않겠다는 뜻이다. 대륙과 해양, 동양과 서양 또한 지구 안에서의 나눔이고 가름이며 다툼일 뿐이다. 지구 밖으로 나아가면 실로 동서남북의 분별은 무망해진다. 서구처럼 팽창적이기보다는 자족적 울타리에 안주했던 기왕의 중화제국사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확장과 확산의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 천하에 만족했던 고전적 중국에서 탈피하여 천외유천(天外有天), 하늘 밖 또 다른 하늘을 향해 맹렬하게 비상하는 기술대국이 된 것이다. 집 우(宇) 집 주(宙), 우주가 그야말로 새로운 집(Home), 천하일가를 넘어 천상일가(天上一家)가 되어가는 비범하고 비상한 포스트-지구(Post-Earth) 시대이다.
3. 2052
2022년, 한중수교 30주년이다. 1992년을 떠올리노라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30년, 불과 한 세대 사이 양국의 세계적 위상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중국은 명실상부 슈퍼파워, 초강대국이 되었다. 이대로 가면 경제규모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것도 시간의 문제이다. 한국 또한 일취월장했다. 중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선진국 반열까지 도달했다. 하드파워는 물론이요 소프트파워, K-열풍이 대단하다. 그러나 그 선진국에 걸 맞는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세계인식을 확보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문제이다. 다시금 가장 오래된 이웃나라, 중국에 대한 인식이 시금석이 되어준다.
동계올림픽을 전후한 한복/한푸 논쟁이 상징적이다. 선진국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소국 콤플렉스를 떨쳐내지 못한다. 작은 나라의 견지에서 큰 나라를 오인하고 오판하는 침소봉대의 혐의가 짙다. 14억 인구대국 중국의 속사정을 통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워낙 오래된 나라이고 원체 거대한 땅을 거느린 나라이다. 자연스레 다종다양한 소수민족을 품고 있는 제국이다. 그 제국을 구성하는 소수민족에 대한 세심한 배려에 너와 남을 가르고 네 것과 내 것을 다투는 소심한 자격지심이 불거진 것이다. 물론 중국에는 좋은 점만큼이나 나쁜 점도 지천에 깔려있다. 우스꽝스럽고 혐오스러운 지점도 적지 않다. 왜 아니겠는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넓으며 얼마나 복잡다단한 사회인데, 세상만사 온갖 일의 축소판이 벌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면모라 해도 그것이 중국의 일단과 일면에 불과할 뿐임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소국과 대국 사이의 구조적 인식의 비대칭성을 늘 자각하고, 관찰자 스스로가 성찰적 안목을 연마해 가야 하는 것이다.
결국 요체는 미래이다. 중국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 어떤 것이 미래를 가리키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내는 것이다. 어떤 점은 나날이 줄어들 것이며, 어떤 현상은 점점 더 확대되어 갈 것이다. 그 경중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2022년 현재, 중국의 가장 큰 대세, 메가트렌드는 뭐니뭐니 해도 기술대국을 향하여 초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세기형 좌/우의 잣대를 훌쩍 뛰어넘어 미래로 앞으로 더 멀리 더 깊이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파는 여전히 인권과 민주라는 낡아빠진 잣대로 중국을 겨눈다. 좌파는 아직도 미국을 비판하는 방편으로 중국을 동원하며 실체가 모호한 공동부유까지 애써 옹호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모두가 저마다 진실의 일면만을 바라보고 일단만을 강조할 뿐이다. 제 눈에 안경이며, 제 논에 물대기가 아닐 수 없다. 관건은 역시 추세를 간파해내는 것이다. 무엇이 대세가 될 것인지를 예각적으로 파악해내는 것이다.
재차 2022년 2월 4일의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상징적이다. 2049년 건국 100주년을 다짐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비전과 미션 또한 ‘테크노-차이나’의 완성이다. 중국의 4대 발명품, 종이, 나침반, 화약, 인쇄술을 융복합하여 서방이 중국을 제압한 사태가 1840년 아편전쟁이었다. 종이와 인쇄술로 중세를 탈각한 계몽주의 시대를 열었고, 나침반과 화약으로 유라시아의 서쪽 귀퉁이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아메리카로 향하는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계몽의 대항해로 세계지도를 작성하고 지도 속의 세계를 하나씩 정복해갔던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돌아 다시금 기술대국 중국이 귀환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네 갈래의 흐름을 가장 주시한다. 미래기술의 최첨단, 스페이스 테크, 바이오 테크, 어스 테크, 그리고 디지털 테크이다. 지구 밖으로 가장 멀리까지 나아가는 우주 산업에서 발군의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생명의 신비 가장 깊숙이까지 파고드는 바이오 공학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고 있다. 거주 가능한 지구를 지속하기 위한 기후와 에너지산업 또한 전력을 다해 키워가고 있다. 또 하나의 가상 지구를 만들어가는 디지털 산업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각각의 영역에서 중국의 현재를 적확하게 짚고 과감하게 미래를 전망해보기로 한다. 그러한 실사구시의 태도를 갖추어야 만이 다음 30년, 한중수교 60주년이 될 2052년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냉전과 열전을 반복했던 지난백년과는 상이한 평화와 조화의 다른백년을 기획하고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기왕지사 미래로 나아가는 것, 가장 처음부터 가장 멀리까지 가보도록 한다. 테크노-차이나 최전선, 스페이스 테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