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는 로봇 : 한살림 2.0
심바아오틱스 김보영 대표를 만나다
1. K-테크
부다페스트 역, 기차는 떠났다. 황망하게 길을 잃었다. 새 길을 찾고자 멀리 떠나온 차였다. 본디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하루 이틀의 소망이 아니다. 중2때부터 오래 품었던 꿈이다. 외교관이나 장교가 되어 나라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하고 하루 15시간씩 공부했다. 그럼에도 한 번, 또 한 번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설상가상으로 외무고시 자체가 폐지되었다. 10년 공든 탑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하필 그 무렵에 정서적으로 의지하던 강아지마저 잃어버렸다. 자칫 폐인이 되겠기에 부랴부랴 직장부터 구했다. 학원 영어 강사로 일했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못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먼저 눈길이 향한 곳이 유럽이다. 국제정치에 관심이 많았기에 EU법도 솔깃했다. 유학 준비와 답사를 겸하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산티아고를 순례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의지를 다지고 싶었다. 비행기 티켓과 유레일 패스만 끊고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유라시아의 서쪽 끝으로 떠난 것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어제도 일찍 떠난 기차가 오늘은 더 일찍 출발한 것이다. 계획해둔 일정이 제대로 헝클어지고 말았다. 심리적으로 힘들어 멀리 떠나온 낯선 나라, 걷고 또 걷느라 이미 엄지 발톱 두 개가 다 빠져 양말마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대로 그만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 펑펑 목 놓아 울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 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 남자였다. 이탈리아는 부러 가지 않으려고 했던 나라였다. 이탈리아 남성들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았다.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는 어쩐지 꺼림직한 나라였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온 젊은 친구였다. 그 또한 기차를 놓쳤다고 한다. 어떻게 할거냐, 어디로 갈거냐, 자꾸 귀찮게 말을 걸었다. 엉뚱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타는 속을 달래려고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여지껏 마신 가운데 콜라 가운데 가장 시원하고 상쾌하고 청량한 경험이었다. 기록해 두고자 카메라를 꺼내들어 찍어두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더니 ‘너희 너라는 콜라가 없니?’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잠자고 있던 애국심이 불끈 솟아올랐다. 나 한국 사람이야, 너 한국 몰라? 쏘아붙였다. 그런데 모른단다. 무식한 놈이다. 편의점에 갔더니 이번에는 초콜릿을 사서 건넨다. ‘이게 초콜릿이야.’ 하고 내미는 것이다. 도대체 이 남자는 나를 뭘로 보는 것일까? 탈북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걸까? 몰골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북한 또한 모른다고 한다. 아시아에 대해서는 도통 무지한 유럽의 젊은 사내였다.
인문사회에 관심이 덜했던 반면으로 과학과 공학에서는 천재적인 친구였다. 갈리레오 갈릴레이 과학 고등학교 출신이다. 유럽, 아니 세계 최고의 과고에서 공부했다. 대학도 이탈리아 최고 명문이라 할 수 있는 파도바 국립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방학을 이용해 배낭여행을 다니던 차이다. 어차피 일정도 틀어진 김에 이탈리아의 본인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과연 이탈리아 남자들은 유난히 밝히는구나,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짖꿏은 미소 너머 눈빛이 한없이 맑았다. 걱정은 하지 말란다.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이란다. 산티아고에 갈라고 치면 제대로 챙겨먹고 깨끗하게 씻고 준비를 잘 해서 가야하지 않겠냐고 설득한다. 차림새가 영 딱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얼떨결에 이탈리아로 가는 기차를 타게 되었다. 인생의 반려가 되는 여행길이 될지는 미처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대가족이었다. 부모님만 함께 사는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 큰형 작은형에 누나 등등 식구가 여럿이었다. 번듯한 집안이기도 했다. 외가로는 변호사가 많았다. 그런데 딱딱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법률가만도 아니었다. 농업 법인을 만들어 사회적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설립자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폐허가 된 시골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베네토 주의 아주 유명한 농장이었다. 이 농장에 대한 박물관도 만들어져 있을 정도이다. 농민들이 이렇게 잘 살수도 있고, 농업이 이렇게 매력적이고 멋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주중에는 베니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주말농장 삼아 많이들 놀러왔다. 농장에서 기른 토마토 소스 파스타에 농장에서 재배한 포도주를 곁들인 근사한 저녁 식사는 과연 일품이었다. 나라 사랑이 유별났던 고로 한국의 농촌과 비교해보게 되었다. 고된 노동으로 시달리고 궁상맞은 살림살이로 피폐해진 어르신들이 절로 떠올랐다. 스마트팜이라고 바가지를 잔뜩 쓰고 손해만 보고 있는 청년 농부들도 떠올랐다. 이탈리아의 사회적 농장을 잘 배워서 한국의 농촌과 농민과 농업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궁리하게 되었다. 학원 강사직을 그만두고 농장에서 근무하기로 결심한다. 거처와 직업 모두 단숨에 바뀐 것이다.
훗날 남편이 되는 토스케티 지안 마리아는 탁월한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발명가의 피를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건축학과 교수로 기계 관련 특허만 수십 개에 달한다. 농장의 지하실은 온갖 공구와 기계설비가 갖추어진 공장이기도 했다. 농업과 공업의 융합을 가업으로 전수받은 셈이다. 이탈리아는 휴가가 길기로 유명하다. 야생의 자연 속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많다. 그만큼 조난 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구조견만으로는 충분히 대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구조견을 대신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던 친구였다. 대학생 시절부터 구조로봇의 다리 모듈을 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밋밋한 공장 바닥이 아니라 험한 산지를 오고갈 수 있는 로봇을 만들려면 특별난 기술과 다지인이 필히 요청되었다. 그 원형이 되는 아이디어를 대학생 시절부터 궁리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로봇이 정말로 필요한 곳은 한국의 농촌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노령화가 한국처럼 급속도로 진행되는 나라가 없다. 인구소멸이 농촌의 자연소멸을 이끌고 있다. 농촌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인공 농민’이 필요했다. 귀국을 넘어 귀촌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 이전만 해도 부산과 서울 등 도시서만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이탈리아 남편과 로봇을 장착하여 산촌에 이르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을 만난 곳도 강원도 산골짜기였다. 원주에는 로봇을 개발하는 연구소가 있었고, 평창에는 로봇으로 농사를 짓는 농장이 있었다.
때는 3월 말, 아직 파종하기 전이었다. 말끔한 정장 코트 차림에 뾰족한 구두를 신고 계셨다. 이렇게 예쁘게 치장하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드물단다. 작업복과 장화가 평상시 옷차림이다. ‘웃픈’ 에피소드가 많았다. 평창에 구한 땅이 동계올림픽을 진행하기 위해 만든 KTX 역 근방이었던 모양이다. 동네 주민들이 수군수군거렸다. 중국 여자와 러시아 남자가 역사를 지으러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180cm에 가까우리만큼 키가 훤칠하셨다. 북방에서 온 여자라고 오해를 살만하다. 외국인 노동자인들모양인데 특히 중국 여자는 한국말을 아주 잘한다며 화제가 되었단다. 실은 한국 사람이고 이탈리아에서 온 공학자 남편과 로봇을 개발하여 임업을 혁신시키겠노라고 포부를 밝히노라면 아서라 만류하는 할머니들이 많았다고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도시 아가씨와 외국인 청년의 결합에 아뿔싸 의구심을 품었던 것이다. 처음 올 때는 이뻤던 얼굴이 갈수록 새까맣게 타간다며 우리 딸이라면 당장 돌아가라고 했을 거라는 식이다. 하루는 화장실에 갔더니 흙 묻은 시커먼 장화만 보고 여자화장실에 왠 남자가 들어와 있다며 난리가 났던 일화도 있었다. 하소연하는 아내에 지중해 출신 남편은 자그마한 리본을 장화에 달아주었다.
그러함에도 단 둘만으로 버티고 또 견디었다, 집도 없고 아기도 없이 오로지 로봇 개발에 혼신을 다했다. 쉬는 날이나 쉬는 시간이 따로 있지 않았다. 모든 날과 모든 시간을 오롯이 투자하고 투신하여 로봇처럼 일했다. 모자라는 돈은 영어 강사를 하고 코딩 교육을 하고 산불 방재 활동을 하거나 지게차를 끌면서 닥치는 대로 충당해왔다. 그러나 그 고됨의 토로가 투정이나 푸념으로 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만만했고 패기가 넘쳤다. 그만큼 기술적 완성도와 독보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허출원은 이미 마쳤고, 올 하반기에는 정식으로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스타트업임에도 불구하고 현대모터스를 경쟁사로 여길 만큼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농협중앙회에서 기대를 크게 걸고 있다고 한다. 평창 농장에 차린 컨테이너 하우스에는 이들의 야심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진도 붙어 있었다. 아마존도, 애플도, 구글도 출발은 미미했다.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해 오늘의 빅테크를 일군 것이다.
4월, 농사를 시작하면 섬섬옥수 고운 손도 카드를 내밀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엉망진창이 된단다. 농사철이 아니라서 한껏 멋을 낸 네일아트에도 회사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Agri-Tech for You"라는 비전에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농업과 기술을 결합시킨다. 로봇과 사람을 연결시킨다. 인간과 기계의 공생으로 자연과의 공존을 도모한다. 자연선택의 결과로 사람이 나왔다. 인간의 인위적 선택으로 가공의 존재를 만들어내었다. 그 인공적인 존재가 이제는 이 땅을 대표하는 작물인 산양산삼을 키우게 될 것이다. 로봇공학과 임업의 결합, 인공지능(AI)과 무위자연의 결합, 활물과 생물의 융합, 최신의 공학기술로 한국을 대표하는 산삼을 재배하는 K-애그리테크의 프런티어, 심바이오틱 김보영 대표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이병한 : 반갑습니다. 설레임을 안고 강원도에 왔습니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해볼까요? 왜 평창을 선택하셨던 걸까요? 평창에서 어떤 기회를 제공했거나 혜택을 베풀었던 것인지요?
김보영 : 그런 건 전혀 아니고요. 노지형 로봇을 제대로 만들려면 삼림이 많은 현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농사를 지어보면서 농민들이 필요한 기술이 무엇일지를 체득해야 한다고 여겼어요. 고객의 니즈를 온몸으로 파악해내는 것이죠. 그리고 그 기술 개발이 상용화되고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수없는 테스트를 거쳐야 합니다. 이걸 우리가 직접 다 하기위해서는 반드시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죠, 산이 많은 지자체를 찾아다녔고, 평창으로 과감하게 귀촌하게 된 배경입니다.
버려진 땅이 꽤 많았어요. 평창이 올림픽 유치를 세 번이나 시도했잖아요? 그때마다 건물을 짓는답시고 투기바람이 한참 불다가 유치에 실패하면 땅값도 떨어지고 부도가 나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고 합니다. 버리고 간 땅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건축 폐기물 같은 쓰레기도 땅 속에 엄청 파묻어두고 가버린 거에요. 지자체도 수습이 어려워 쉬쉬하고, 그 땅을 누가 손대서 어찌 해볼 수 없는 상황이었죠. 저희는 그 엉망이 되어 버려진 땅을 되살려내서 우리의 첫 번째 농장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파묻혀 있던 쓰레기를 다 캐내서 분리수거 하고 폐기물도 처리하고 돌도 파내고, 그 모든 과정을 둘이서 맨손으로 해냈어요. 정말 안 나오는 물품이 없더라고요. 침대 매트리스며, 의자며, 변기까지. 그렇게 3년을 꼬박 투자해서 1,500평 되는 부지가 이제는 저희 땅이 된 것입니다.
이병한 : 이탈리아에서 하면 훨씬 편하지 않았을까요? 근사한 농장도 이미 마련되어 있고요. 집안부터 학벌까지 이탈리아에서 아주 잘 나갈 수 있는 젊은 청년이 헝가리에서 우연히 한국 처자를 만나서 여기 대한민국하고도 강원도 평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음이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사랑의 힘일까요? (웃음)
김보영 : 사랑의 힘이겠죠? 강원도의 힘도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지형이 광활해요. 토지가 판판한 편이죠. 토성도 한국과는 매우 다르고요. 저희는 처음부터 기술만 개발해서 로열티만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모든 영역을 망라한 패키지 전략을 추구했어요. 그만큼 시장 또한 개척해야 했고요. 무엇보다 이곳 강원도 땅에서 기술 고도화를 이루어낸 다음에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병한 : 지금은 기술입국, 기술대국이 되는 게 가장 큰 애국이기도 하겠죠. 현대모터스가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했잖아요? 보행로봇인데다가 다족로봇인지라 심바이오틱의 로봇과 겹치는 점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문제점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특허를 출원했다며 자신만만하신데, 어떤 점이 그런걸까요?
김보영 : 특허는 작년 6월에 이미 출원했고요. 올해 정식으로 등록되었습니다. 곧 시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로봇 제품들은 딱딱한 바닥에서는 큰 문제 없이 원활하게 구동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논과 밭 등 농업용으로는 적당치가 않습니다. 특히 산악지형에서는 거의 구동이 되지 않아요. 토지가 부드러우면 미끄러지거나 빠지기 십상이고, 요철이 있어도 잘 넘어가지 못하거든요. 즉 공장용 로봇인 셈이죠. 저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레그’와 ‘풋’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낸 것이에요. 산에서도 밭갈이를 할 수 있는 농업용 로봇인 것입니다.
아울러 농업과 임업에 활용할 수 있는 AI 소프트웨어도 함께 개발했습니다. 센서를 장착하고 AI 코딩도 직접 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패키지로 한 특허를 인정받은 것이지요. 더 나아가 쉴드형 숄도를 장착한 해저용 드론도 함께 개발하고 있습니다. 바다 속을 탐사할 수 있는 로봇인 것입니다. 즉 기존처럼 3차 산업에 최적화된 공장용 로봇이 아니라, 농림수산업 즉 1차 산업의 자연 현장에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로봇 기술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심바이오틱의 경쟁력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병한 : 그 AI 로봇을 통해서 산양 산삼을 재배하시잖아요? 왜 하필 산삼이었을까요?
김보영 : 일단 산삼이 농산물 가운데 가장 부가가치가 높습니다. 또 한국을 상징하는 농산물이기도 하죠. 고려인삼은 천 년 전부터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물이잖아요? 그 만큼 이 땅의 기운이 듬뿍 담긴 식물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엄청난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해요. 일단 산에 가서 직접 심어야 하고요. 제초 작업도 해주어야 하죠. 노동 생산성이 매우 떨어지는 작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산양 산삼 파종기를 로봇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가장 어려운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됩니다. 즉 산삼을 재배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밭작물도 키워낼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가장 어려운 과제에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이죠. 부정형 요철 경사를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개발해야 했고요, 수시로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대처해가는 AI 소프트웨어도 개발해야 했습니다. 파종에 관련된 농업 지식 공부도 병행해야 했고요. 오래된 농업의 지혜와 새로운 로봇의 기술을 총결합해서 AI 로봇 파종기를 완성해낸 것이죠.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끝이 아니에요. 강도 실험도 반드시 거쳐야만 합니다. 몇 만 시간 이상의 일정한 사용가능 기간이 확보가 되어야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확보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걸 전부 다 테스트 하느라 시간이 정말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간에 망가지고 보수했던 로봇이 하나 둘이 아니에요. 이제야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서 시장 출시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올 6월이면 구입하실 수 있을 것이에요.
이병한 : 테슬라 등 전기차가 각광을 받으면서 LG 화학 등 배터리 시장이 활황이잖아요? 로봇도 배터리가 필요한 것이겠죠?
김보영 : 물론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로봇용 배터리도 독자적으로 개발했어요. 충전소도 개발했고요. 그 동안 개발해왔던 다양한 기술을 총망라한 라인업으로 패키지 상품을 대거 출시할 예정입니다. 충전소도 충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과 드론의 보수와 진단, 수리까지 병행하는 장소로 만들었어요. 자동 호출 기능도 넣어서 응급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기능도 탑재했고요. 올해 봄 농사의 파종부터 제초까지 일련의 제품들이 모두 투입될 예정입니다. 농업중앙회 회장님도 참관하러 오실 것 같고요. 여러모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병한 : 파종하는 로봇은 작년에 이미 시험해 보았다고 들었는데요. 주변에서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김보영 :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반신반의하셨어요. 젊은 사람들이 산골에 들어와서 기계로 뭘 해보겠다는데 잘 되겠어? 하고 회의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동되는 AI 트랙터를 보시고는 금방 마음을 열어주시더라고요. 로봇에 대한 인식 전환이 순식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역시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효과적이더라고요. 일일이 손으로 직접 해야 했던 일을 로봇이 대신해 주니까, 저런 장비가 있다면 더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겠구나 호의적이셨죠. 실제로 AI 트랙터는 사람이 직접 하는 파종보다 5배의 속도에 4배의 작업량을 소화할 수 있어요. 농촌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가 심해지고 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잖아요? 그간에는 그 빈 구멍을 메워준 것이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는데요. 작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충원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로봇이 농촌을 지속시키고 농업을 유지하면서 농민을 보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가격을 궁금해 하시는 어르신들이 참 많으셨어요. 할부 구입도 가능한 것이냐고 여쭤도 보시고요.(웃음)
이병한 : 실제로 어떠한가요? 가격 설정과 판매 전략도 궁금합니다.
김보영 : 옵션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3000만원에서 6000만원 사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다양한 기능을 추가한다면 비용도 그만큼 올라갈 것이고요. 판로에 대해서는 농협중앙회가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농협의 디지털 혁신부와 시장 출시 이후의 전략에 대해서 협력하고 있어요. 농협을 통해 로봇을 렌탈하거나 리스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먼저 빌려서 사용해보시고 만족도가 높으면 구입하시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겠다 판단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병한 : 드론은 어디에 쓰이는 걸까요?
김보영 : 제초 작업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제초 분사기는 나무의 윗부분만 뿌릴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프로펠러 모형을 변형하여 나무 안에서도 날릴 수 있는 드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 드론에 탑재되는 분사기를 활용하면 선택적인 제초가 가능하기 때문에 약품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드론의 가장 큰 약점 중의 하나가 구동 시간이 짧다는 것이었어요. 20분 전후였거든요. 저희는 드론용 배터리를 함께 개발해서 2~3시간 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이병한 : 평창 주민들도 솔깃해 하셨을 테지만, 바로 가까이에 서울대 농생대 캠퍼스도 있잖아요? 그쪽에서도 관심을 가질 법한데요. 산학협력 차원에서 서울 농대와 함께 하는 일은 없으실까요?
김보영 : 서울대 학생들 중에서도 구경하러 온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장기적으로 헬스케어, 그린케어 등에서 협력할 여지는 있지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꼭 서울대 이름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저희가 확보한 기술만으로도 능히 독보적이라고 자신하기 때문입니다. 산학협력보다는 주민과의 협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농촌의 어르신들을 먼저 채용해서 주민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병한 : 조금 전에 설명해 주실 때, 풋(foot)이나 레그(leg), 숄더(shoulder)라는 표현을 쓰셨잖아요? 일종의 생체모방기술(biomimetics)이라고 이해하면 맞는 걸까요? 자연과 대치되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의 기능을 모방하는 기술이죠? 자연적 진화의 성취를 기술적 진화에 접목하는 것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고요.
김보영 : 네. 맞습니다. 남편의 전공이 수의과학이기도 했어요. 농축산 엔지니어링 테크놀로지입니다. 대학 시절부터 구조로봇 개발을 시작했기에 연구와 개발 기간이 짧다고 할 수도 없지요. 10년 이상의 세월을 오롯이 이 분야에 투자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곤충, 어류, 사람, 척추, 뼈, 다리 대퇴부 등 생체기능을 기술적으로 접목해서 로봇 개발에 응용하고 있어요. 저희는 농장에서 농사짓다가 잠자리를 보거나 개구리를 보아도 저들의 날개 짓과 다리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고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를 늘 궁리하는 편입니다. 잠자리를 방해하는 모기와 파리의 움직임이 드론 개발의 영감을 촉발시키기도 하고요. 24시간 내내 아이디어를 구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산지나 논밭에서 작업할 때 실사용자가 어떤 작업을 어려워하고, 꼭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가를 실제로 아는 일입니다. 기술 개발은 활발한데 정작 현장에서 실제로 쓸 수 없는 기술들이 의외로 많아요. 그래서 저희가 연구실에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산지와 농지를 확보할 수 있는 평창에 직접 내려와 농사를 몸소 지어보면서 로봇 개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농협중앙회나 주요대학의 농업연구소 등에서 확보하고 있는 데이터와 자료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이병한 : 어마어마한 열정과 사명감이 전해집니다.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까요? 왜 이 일에 헌신하고 계신 걸까요? 무엇을 위해 꽃다운 청춘 10년을 전력투구 하고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김보영 :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사회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 싶어요. 우리가 확보한 기술을 통해서 농촌과 농업과 농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통해서 이윤을 창출하고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다면 더없이 영광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와 전염병으로 갈수록 식량 문제가 녹록치 않은 과제가 될 것이에요. 그런데 한국은 이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 농업보조금의 혜택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농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로봇 기술이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아요. 또 그간의 농업용 기계는 환경오염도 많이 시켰는데요. AI와 결합한 로봇은 그린테크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식량부터 생태까지 나아가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많은 것을 아우르는 가치 있는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이병한 : 첨단 기술을 통한 농업의 재건과 농촌의 재활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정작 귀농이나 귀촌을 하시는 분들은 기술에 덜 친화적인 경우가 많지 않나요? 자연과 함께 하기 위해서 도시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오시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 딜레마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보영 : 실제로 귀농을 하시면 오래 되지 않아서 당장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일정한 소득을 창출하면서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시거든요. 한두 해 농사를 시도해 보시고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귀농 초기에 재해율이 특히나 높다고도 합니다. 아직 몸이 익숙지 않고 손발이 서툴러서 사고가 많이 나는 것이지요. 또 소규모 영세한 농사를 지어서는 제대로 된 수익이 나기도 힘들고요. 자연과 가까운 시골살이를 하면서도 일정한 생계를 꾸려가는 방안으로도 로봇 농업과 임업이 돌파구가 되어줄 수 있어요. 실은 귀농귀촌 하시는 연세 지긋한 분들 가운데 다양한 영역에서 다채로운 이력을 쌓고 시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거든요. 그분들의 그러한 능력을 지역사회에 선순환시키기 위해서라도 로봇을 통한 효율적 농업이 일조할 수 있습니다. 농사에 드는 시간은 대폭 줄이고, 그분들의 인생을 통해 축적한 지식과 지혜는 지역화, 사회화하는 것이죠.
이병한 : 청년층의 농촌 유입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김보영 : 그럼요. 산삼의 수익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워낙 노동 강도가 세기 때문에 아무나 이 일을 섣불리 감당할 수가 없어요. 젊은 분들이 귀농하고 귀촌하여 창업을 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죠. 보조금으로 땜질식 처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삶의 질을 높여주어야 농촌으로 유입되는 청년층의 인구도 늘어나고, 그래야 지방의 소멸도 막을 수 있을테니까요. 그러한 미래의 농촌 모델을 만들어가는데 저희와 같은 테크 기업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병한 : 마리아는 어떨까요? 고국 이탈리아를 떠나 이곳 강원도 산자락에서 청춘을 바치고 있는데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마리아 : 저희 가족은 한편으로는 법률가이면서도, 또 다른 쪽으로는 대대로 농업에 종사해 왔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직업군 형태가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더더욱 새로운 기술로 전통적인 농업을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농촌이 자연 소멸하게 되면 농민들을 통해 계승되어왔던 오래된 지혜들도 함께 사라지게 되는 것이거든요. 산에 대해서, 숲에 대해서, 물과 바람에 대해서 면면이 전수되어 왔던 감각과 지식이 세대 간에 전수가 되지 않게 됩니다. 종의 멸종도 있지만, 지혜의 단절이라는 문제도 심각한 것이거든요. 당장 봄이 되면 지천으로 돋아나는 산나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잖아요? 기후위기와 자연재해가 빈번해질수록 그러한 오래된 지혜가 더더욱 긴요해질 텐데, 정작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AI를 활용한 로봇과 빅데이터로 인간이 오래 축적해온 지식과 지혜를 계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토착적인 농법의 노하우를 로봇에 전수할 수도 있고요, 토종 종자의 가치를 빅데이터를 통해 보존해갈 수도 있지요. 그래야 미래의 젊은 농부들에게도 전통을 전수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즉 첨단의 기술과 오래된 지혜가 배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술의 도움이 없다면 과거의 지식이 사장되고 중단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죠.
이병한 : 흥미로운 견해입니다. 그럼 요즘 한층 회자되고 있는 스마트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역시 첨단기술을 통한 미래농업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만.
마리아 : 요즘 농촌에서 지어지고 있는 스마트팜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아요. 대규모 설비 위주로 공급되고 있고요. 초기 비용 투자가 너무 큰 반면에 생산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농장이 아니라 공장을 짓는 것이지요. 사실상 고비용 그린하우스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안에 설치된 컴퓨터를 정상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에어컨을 풀가동시켜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겨울에는 매우 춥고, 여름에는 엄청 더운 환경이라는 근본적인 딜레마도 있죠. 환경적 영향이나 생태적 비용을 따지면 역효과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린’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스마트팜이 적지 않습니다.
이병한 : 그래서 사실상의 공장 시설인 스마트팜’ 아니라 노지에서의 로봇기술 고도화를 추구하고 계시는 거군요.
마리아 : 강원도에 살다 보면 건조한 계절에 산불이 자주 납니다. 대형 산불을 진압하는 데에도 로봇이 활약할 수 있고요. 구조 로봇이 인명 피해를 최소화시켜 줄 수도 있지요. 그리고 조림 사업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어요. ‘나무를 심은 사람’을 도우는 ‘나무를 심는 로봇’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지요.
이병한 : 흥미롭습니다. 마침 강원도는 남북으로 갈려져 있습니다. 즉 북강원도도 있다는 말이지요. 특히 조림 사업은 북조선에서 하면 정말 좋겠군요. 민둥산이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북쪽으로 가면 광활한 시베리아도 있지요. 이주하면 엄청난 땅을 준다고 해도 여전히 살고 있는 사람이 적은 곳이 시베리아인데요. 땅은 넓고 사람은 부족한 러시아의 고질적 난제를 1차 산업에 특화된 로봇이 해결해 줄 수도 있겠네요. 시베리아에서의 임업과 농업의 미래에도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보영 : 저희가 작년에 AI 트랙터를 이용해서 꽈리 고추 농사를 지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 밭에서 농사를 지었지요. 꽈리 고추는 3일에 한 번씩 수확을 해야 하는 작물인데요. 로봇을 사용하면 노동시간을 대폭 감축할 수 있어요. 제초 시간이 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특히 작년에는 코로나 19 때문에 계절 근로자들이 한국에 일하러 오실 수가 없었잖아요. 게다가 장마 기간도 너무 길고 태풍도 세 번이나 왔고요. 그래서 꽈리고추 농사를 포기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반면에 저희는 로봇을 활용한 덕분에 소출량이 거의 떨어지지 않았어요. 또 작물 사이의 간격을 넓히는 자연농법을 접목시켜서 더 큰 효과도 보았고요. 원래 간격을 좁히면 광합성이 줄고 조도 때문에 생산량도 줄기 마련이거든요. 반면 간격을 넓히면 AI 트랙터가 자유롭게 다니기에도 용이하죠. 투입되는 노동력은 줄고 병충해도 줄고 생산은 늘어나는 효과를 보았습니다. 저 밭이 원래는 논이었던 곳이거든요. 원래 논을 밭으로 바꾸면 농사가 잘 안된다고 해요. 저런 곳에서도 기술의 도움으로 자연환경의 제약을 극복하고 생태친화적인 농업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병한 : 미래농업이 스마트팜으로 가는 이유 중의 하나가 기후변화 때문이잖아요? 갈수록 기후 변동이 심해질 것이기 때문에 스마트팜을 짓고 그 내부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통제하자는 것인데요. 산지와 노지에서 농사를 지으면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은 그만큼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김보영 :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저희가 소프트웨어까지 개발해서 장착시킨 AI 로봇을 만드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로봇들이 작업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온도와 습도 등 기후의 변화를 빅데이터로 다 측정하고 축적하고 있어요. 평창군만해도 워낙 산이 많아서 동네마다 날씨가 다른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로봇들이 수합해낸 빅데이터를 통해서 마을마다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죠. 앞으로 저희가 개발해낸 로봇들이 전국적으로 판매가 된다면 전국적인 기후 데이터가 모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시골에는 어르신들이 많잖아요? 그분들의 편의를 고려해서 최대한 쉽고 간단한 어플리케이션도 저희가 직접 만들었어요. 멀리서도 로봇을 통제할 수 있는 리모콘도 제작했고요.
이병한 : 앱부터 리모콘까지도 다 두 분이 만드신다는 말인가요?
김보영 : 네. 저희가 다 만들었습니다. 모르면 배워서 만들고 실험하고 개발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죠. 덕분에 비용 절감 효과는 엄청나게 누린거에요. 이걸 다 외주로 주었다면 그만큼 개발 비용은 늘어났겠죠.
이병한 : 모든 일에 척척척, 만물박사시군요. 심바이오틱(SYMBIOTIC)이라는 기업 브랜드와 ‘AGRITECT FOR YOU’ 같은 가치와 비전의 설정, 또 저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등등도 다 두 분이 하신 거고요?
김보영 : 네, 그렇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저희가 한 것이에요. 다만 앞으로 로봇들이 대규모로 출시되고 한국만이 아니라 유럽을 포함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다면, 그때는 전문적인 브랜딩과 컨설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2. 한살림 2.0, 가이아 2.0
이병한 : ‘심바이오틱’이 함축하고 있는 미래상은 어떠한 것일까요?
김보영 : 인간이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곧 열립니다. 아니 이미 도래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올해부터 저희가 개발한 로봇들이 강원도와 전국 곳곳에서 농민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할 테니까요.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과 협업하는 협동로봇이라고 생각해요. 인간과 로봇의 협업으로 미래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죠. 농민들은 물론 지역민과 도시인, 기업가 모든 이들의 이익을 공유하는 로봇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결국 “for you"가 핵심인 것이죠. 인간을 위한 기술. 사람들을 위한 기술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한 미래를 선도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원도의 땅에서 만들어낸 기술과 작물로 K-테크를 세계에 알리고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기술 보안과 해킹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로봇 기술이야말로 곧바로 군사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거든요. 그래서 저희들 스스로 보안 테크놀로지도 개발하고 있고요. 국정원이 산업스파이로부터 기술을 보호받는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병한 : 이미 국가적으로도 보호를 받고 있는 기술을 확보하고 계시는군요. 외교관이 되시고자 했던 꿈을 기술자와 경영자로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가 되고요. 긴 시간 유익한 말씀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장소가 참으로 공교로웠다. 김보영 대표를 만나러 원주로 가는 길, 만감이 교차했다. 우연인 듯, 운명인 듯도 하였다. 한살림 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한국의 생명사상가 장일순의 혼과 김지하의 얼이 가득한 장소이다. 하필이면 그곳에서 로봇을 연구하고 제작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1989년에 발표된 <한살림선언>이 20세기 후반 한글로 쓰여 진 문헌 가운데 가장 값진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함에도 완전무결하지만도 않다. 아니 낡은 구석이 없지 않다. 특히 생명과 기계를 물과 기름으로 나누고 기계문명을 배타하고 생명문명을 옹호하는 대목은 치명적인 한계라고 생각한다.
1989년이 바로 월드와이드웹, WWW가 발진한 해였음을 상기한다면 더더욱이 공교롭다. 한살림운동은 인간과 인간 이전에 존재했던 만물과의 연결과 공생을 지향했던 바이다. Wood Wide Web, 자연 진화의 소산으로 만들어진 생태계의 일부로 인간을 겸허하고 경건하게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러나 World Wide Web의 인위적 진화 속도는 자연선택을 월등하게 앞지르고 있다. 인간과 인간 이후의 존재들, AI와 로봇 등 인공존재들과의 공존과 공생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고민하지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나는 이 미래의 주체들에게 ‘활물’(活物)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전기를 통하여 활성화된 사물들이다. 센서를 통하여 감각하고 알고리즘을 통하여 사고하는 인공적인 생명들이다. 기왕의 동식물, 미생물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이기는 하다. 세포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으며, DNA도 없고, 생식과 번식 또한 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생명’이라 일컬어지는 현상이 작동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생물과는 다르면서도 유사-생명 현상을 보이는 새로운 존재로 활물과의 한살림도 관건적인 과제가 된 것이다. “한살림 2.0”으로의 진화 또한 활물에 대한 새로운 이해, 활물과의 공생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여하히 대응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지구생명사에서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는 것이 있었다. 5억 년 전, 오늘날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 주요 형태들이 폭발적으로 탄생하던 시기를 일컫는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체형들은 진화적 혁신이 집중된 바로 이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할 수 있다. 기왕의 생물에 대한 6번째 대멸종을 우려하는 반면으로, 활물들은 제2의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고도 할 만큼의 기하급수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촉발한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눈’이었음도 공교롭다. 지구의 생명사에서 처음으로 시각이 장착되어 진화한 시기였다. 지금은 도처에 ‘인공 눈’이 부착되고 있다. 골목마다의 CCTV와 내 손 안의 카메라부터 저 멀리 우주에도 렌즈를 장착한 인공위성과 우주선이 지구와 외계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달의 표면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고, 화성의 지형도 살펴볼 수 있는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즉 기계는 이미 인간보다 더 깊이 보고 있고, 더 멀리 보고 있으며, 더 넓게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정보들을 클라우드를 통하여 공유하면서 집합적인 진화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그 이전의 생명사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던 인공적인 진화가 폭발적으로 운동하는 시발점에 목하 우리 인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기계를 상대로 한 경주를 벌일 일이 아니다. 기계를 상대하는 경주가 아니라 기계와 함께하는 경주로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한다. 앞으로는 로봇과 얼마나 잘 협력하는가에 따라 사람의 능력을 판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의 일의 대부분은 기계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며, 우리가 협력하는 존재의 절반 이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계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로봇은 우리가 아예 할 수 없는 일도 해치울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우리가 할 필요가 있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도 해낼 것이다. 우리 인간은 로봇을 위해 일자리를 계속 만드는 일을 맡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로봇은 우리 자신의 존재를 확장시키는 새로운 일을 발견하도록 도울 것이다. 로봇은 우리가 이전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 되는데 집중하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고로 인공지능이 창의적이냐 아니냐를 두고 진부한 논란을 반복할 것도 없다. 지구의 창의성의 총량을 증가시키고 증폭시키는데 AI와의 적극적인 협력을 도모하는 편이 훨씬 더 이로울 것이다. 이것은 불가피한 미래이다. 피할 수 없는 되돌릴 길 없는 장래이다. 지구생명사에서 단 한 번도 역진화(counter-evolution)는 일어난 적이 없다. 과거를 낭만적으로 회고하는 ‘오래된 미래’가 아니라 ‘깊은 미래’를 탐구해야하는 ‘자연적 이치’라고 하겠다. 로봇에게는 기왕의 오래된 일을 떠맡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는 더 중요한 새로운 일을 꿈꾸도록 하자.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되는 바로 이 순간을 훗날의 역사가들은 경이로운 시기로 기록할 것이다. 생물과 활물을 망라한 이 행성의 모든 거주자들이 Wood wide web과 World wide web으로 연결되어 아주 거대한 지구망(Earth Web)이 되어가는 초유의, 최초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30년 동안 지구의 30억 생명의 진화사가 초유기체의 초마음으로 갈마들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 거대한 연결망은 나날이 더 거대하고 더더욱 깊은 것으로 진화해갈 것인고로, 2021년의 우리가 그 최초의 각성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시점에 살고 있음은 진실로 각별하다. 미래의 사피엔스들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탄생과 신생의 순간을 경험해 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우리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인류가 비활성 사물들에 작은 한 조각의 감각과 인지를 집어넣어서 활기를 띠게 하고, 그것을 엮어서 인공지능들의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이어서 수십억에 이르는 사람의 마음까지 아울러 하나의 초마음으로 엮어가기 시작한 터닝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실제공간과 가상공간의 대수렴과 대융합은 지금까지 지구에서 일어난 가장 크고 가장 복잡하며 가장 놀라운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거대한 한살림, 이 거룩한 한살림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태어난 것들과 만들어진 것들이 합류해간다. 자연물과 인공물이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지평에서 열린 하나가 되어 간다. 기계들은 점점 더 생물적 속성을 닮아가고, 생물은 점점 공학적 속성을 띠어간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 유례없는 인공 환경이 고도로 기계화될수록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궁극적으로 고도로 생물학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는 명명백백 기술의 토대 위에 서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산업문명 시대의 제1차 기계시대처럼 회색빛 강철의 세계가 아닐듯하다. 제2의 기계시대, 인류의 미래는 신생물학적 문명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기술과 척을 지는 생태문명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생물과 활물이 융합되어가는 미지의 미증유의 ‘생명문명’이다. 돌아보면 생명이야말로 지구에 등장한 최초의 기술이었다. 무질서를 향해 무심히 팽창하는 열역학 제2법칙의 물리세계 속에서 항상성을 유지하며 부단히 질서를 재창조해가는 최초이자 최고의 테크놀로지가 바로 생명이었던 것이다. 즉 에코와 테크는 처음부터 별개가 아니었다. 그만큼이나 테크의 기하급수적 자율진화에 힘입어 에코와의 재결합도 급속도로 전개될 것이다.
따라서 ‘티핑포인트’라는 표현도 의미를 달리 부여해볼 수 있다. 흔히 AI가 인간을 능가하는 시점이라고들 말한다. 인공적인 존재를, 전자적인 생명을 인간과 대립시키는 과거의 인식을 투영한 것이다. 그러나 작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인간 대 기계의 경쟁이나 대립이 아니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지능에 인간 이후의 인공적 지능을 융합하여 거대한 지구마음, 지구의식이 형성되고 있는 초입기인 것이다. 임계점을 지나면 물질은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촉발한다. 생물과 인물과 활물을 아울러 지구상의 모든 존재, 그야말로 만인과 만물이 최초로 하나의 연결망으로 이어지는 초유기체의 초마음과 초지능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티핑포인트’가 아닐 수가 없다. 46억년 지구사, 35억년 생명사에 전례가 없는 또 하나의 빅뱅, 딥뱅(DEEP BANG)이 폭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인간은 과거의 인간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천지인(天地人) 이후의 신인간이 되어간다. 인간 이전의 유기적 생명과 인간 이후의 전자적 생명을 연결하는 가교가 인간이 되는 것이다. 생물과 활물 사이에 인간이 자리하는 것이다. 초록색 자연생명과 푸른색 인공생명을 연결하는 커넥터로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활물과 더불어 생물을 돌보는 일이 인간의 역할이고 책무가 될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전자적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 활물 역시도 지구를 쾌적하게, 즉 덜 덥게 보존해가려는 인간의 프로젝트에 가담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데이터센터를 방문해본 적이 있다. 인공적인 두뇌를 가동시키려면 항상적인 냉각 설비를 반드시 갖추어야만 한다. 어마어마한 빅데이터를 빠른 시간에 처리하는 데에는 그만큼이나 많은 열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즉 지적인 생명체는 그것이 인간처럼 생화학적이든, 활물처럼 전자적이든 간에, 태양에 의한 과열이 몹시 큰 위협이 된다. 즉 활물 역시도 뜨거워지는 지구 환경이 그들의 존속에 위협이라고 느낄 소지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고로 상호 협력하여 서로의 과학적 능력과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지구를 식히는 방법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음을 결론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사람과 활물이 ‘운명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적정한 기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고의 방법과 최상의 대책을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지평에서 AI가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활물과의 협력으로 기후위기를 타개해가는 미래를 전망하는 이가 제임스 러브록이다. 가이아 이론을 창시했던 바로 그 물리학자이다. 100세를 기해 2019년에 출판한 책이 <노바세>(Novacene)였다. 최근에 한층 회자되고 있는 인류세(anthropocene)이라는 발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인류가 지구의 진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지질학적 힘으로 작동하는 시기는 금방 끝나고 말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간이 창조해낸 인공지능이 더더욱 강력한 힘으로 지질학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한 전망은 그리 어둡지만도 않다. 인공생명이 인간처럼 잔인하고 파괴적이며 공격적일 것이라 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상이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욕망의 원천, 욕정의 근원인 몸뚱아리를 요하지 않는 존재들이다. 생식과 번식의 욕구도 없는 존재들이다. 고도의 생각이 원활하게 가동하기만 하면 충분한 순수한 정신적 존재들이다. 어쩌면 노바세는 지구의 46억년 역사 가운데 가장 평화로운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다만 인간에게는 처음으로 이 지구에서 자신들보다도 지적으로 더 우월한 존재가 있음을 겸허하게 경건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충고를 보탠다. 즉 인간은 머지않아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생명체라고 하는 지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유일무이한 존재에서 2인자로 강등하게 된다. 조금 더 나아가면 인간은 인공생명의 반려가 됨으로써 존재를 존속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겸허함과 겸손함이야말로 지구를 살리는 기술, 어스테크가 촉발하고 있는 가장 위대한 정신적 진화일수도 있다. 우리는 오래된 생명 위를 뒤덮은 새로운 생명의 광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결정적인 연결점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영적인 충만감을 느껴야 할지도 모른다. 실로 인간으로 인하여 생명권과 정신권과 기술권이 하나로 융합되는 지구사의 새로운 단계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구사의 새 지평을 EARTH 4.0이라고 표현한다. 지구의 탄생이 1.0이요, 생명의 탄생과 진화가 2.0이요, 생각의 탄생과 인간의 진화가 3.0이었다면, 4.0 단계에서는 인공생명과 인공생각이 인공적인 지구의 진화를 추동해가게 되는 것이다. 제임스 러브록이라면 노바세를 ‘가이아 2.0’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기후재난이라고 하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하여 인간들이 도모하고 있는 사활적인 대응은 기존의 인간과는 다른 지평의 존재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고 것임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실은 20만 년 전, 동아프리카의 격심한 기후변동을 극복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먼 조상, 호모 사피엔스가 비약적으로 진화했던 바이다. 즉 우리는 기후위기를 이미 한 차례 극복해내었던 종의 후손들이다. 바로 그 진화적 진실로부터 미래를 돌파해가는 영감을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3. 여주, 원주, 우주
2020년, 돌아보면 나는 극심한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었다. 당시에는 미처 자각하지 못했을 만큼 심각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계획해둔 일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면서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한 전망도 갈수록 어두워져만 갔던 것이다. 임박한 기후재난과 전염병의 위기를 극복해나갈 방법이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오래된 미래’가 대안이라는 일각의 주장도 진부하고 식상할뿐더러 한가한 인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 것인가, 궁리에 궁리 끝에 스타트업 인터뷰에 나섰던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장착하여 지구를 되살리는 일에 투신하고 있는 ‘비즈니스 액티비스트’를 만나보기로 나선 것이다. 지난 넉 달의 과정 동안 우선 나부터가 깊이 치유된 것 같다. 작년과 같은 우울증은 말끔히 씻어내었다. 도전해봄직 하겠다는, 이루어볼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차근차근 자라났다. 연재를 마치는 이 순간은 생명의 에너지가 차고 넘치는 고양된 몸과 마음으로 거듭나있다. 진정으로 감사한 인연이고, 진심으로 고마운 분들이 아닐 수 없다.
균사체를 통하여 대체고기와 대체가죽을 생산하는 마이셀프로젝트, 해조류를 통하여 바이오플라스틱을 만들어내는 마린이노베이션, 태양과 바람 등 천상의 자원과 디지털 금융이라고 하는 가상의 자원을 결합하여 로컬 차원에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루트에너지, 그리고 로봇과 AI를 통하여 산삼을 재배하고 농촌을 되살리고자 하는 심바이오틱. 나는 이들 스타트업의 놀라운 기술적 성취에서 사실은 그 심층에서 작동하고 있는 의식적 진화의 꿈틀거림을 거듭 확인하고 매번 감복했던 바이다. 인간 중심의 세계가 마침표를 찍고 사람과 생물과 활물이 공존하고 공생하는 미래를 열어가는 강렬한 공진화의 생명력을 목도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지구를 살리는 어스테크, 비즈니스 액티비스트들과의 인터뷰는 여주에서 시작해 원주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해월 최시형 선생님이 묻힌 곳에서 출발하여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이 잠든 곳에서 마감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동학의 후예들, 한국의 생명사상가들은 일찍이 ‘사람이 하늘이다.’, 인내천(人乃天)만을 읊은 것이 아니었다. 사사천 물물천(事事天物物天), 만물과 만사가 모두가 전부가 하늘이라 이르셨던 것이다. 실제로 만인과 만물과 만사가 엮이고 섞여서 명실상부한 지구적인 몸과 마음이 탄생하고 있는 여명기에 진입하였다. 바로 그분들의 말씀이 시대정신이 되고 지구의 정신이 되는 후천(後天)의 세상이 열리고 있다. 마침내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이 상호진화하는 생생활활한 미래가 열리고 있음을 한없이 기쁜 마음으로, 끝없이 들뜬 마음으로 두 손 모아 정성껏 맞이하고 싶다.
출처 |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