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생명문명의 봄
1. 2020과 2021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려야 했단다. 온갖 외국어들이 들려오던 국제공항들은 일제히 문을 닫고 스산한 적막감만 흘렀단다. 학교와 회사와 공장도 텅 비어갔지. 저마다 집에 콕 머물며 다른 이들과의 만남을 최대한 줄였단다. 친구도 가족도 동료도 언택트, 비대면으로 소통했지. 혹 길에서 마주친 낯선 이가 헛기침이라도 할라치면 모두가 뾰족한 눈 꼬리로 쏘아볼 만큼 마음도 사나웠지. 2020년이 그랬어. 네가 태어나 두 돌이 된 해였다.”
말문이 터져 부쩍 종알종알거리는 2018년생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2030년을 곰곰 생각해 본다. 마스크 차림으로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2020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회고될 것인가. 서늘한 ‘파국의 서막’이었다고 할까. 아니면 심기일전, ‘대전환의 출발’이었다고 할까. 어느 쪽이든 2020년은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이다. 아니, 잊어서는 아니 될 한 해가 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한해였다. 돌아가서도 안 될 한해이다.
지난 백년 인류가 전속력으로 질주했던 근대문명이 지속 불가능함을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학습하게 된 것이다. 귓등으로만 흘려들었던 숱한 경고를 끝내 실감하고 체감하게 되었다. 하여 잠시 멈춤을 거두더라도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세기와의 산뜻한 작별, 기왕의 산업문명과는 최대한 거리를 두어야 하겠다. 20세기는 2020년이 되어서야 느즈막이 마침표를 찍었고, 진정한 21세기는 2021년부터일지 모른다. 고로 2021년으로의 이행은 고작 달력을 바꿔달고 새 다이어리를 장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세기의 변화이고, 세계의 전환이며, 문명의 진화를 수반해야 할 것이다. 생명을 생각하는 생활을 생산하는, 생명문명의 원년(元年)으로 2021년을 정성껏 맞이해야 하겠다.
직업병이 발동한다. 문명사학자의 시각으로 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21세기를 통으로 꿰어보고 싶다. 천하(天下)라는 말이 있었다. 19세기까지 동아시아인들이 공유했던 핵심 개념이다. 천하위공(天下爲公), 개별 나라보다는 문명 단위의 정체성을 중시하던 시절이다. 20세기를 통해 세계(WORLD)라는 관념으로 대체된다. 두 번의 천하대란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이라 불렸다. 그 후 전후질서 재건을 위해 등장한 국제기구들에도 '세계'를 새긴다.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무역기구(WTO) 등이 대표적이다. 제1세계, 제2세계, 제3세계라는 표현도 널리 쓰였다. 세 개의 세계를 중심과 주변과 반주변으로 아우른 세계체제론은 20세기 후반 가장 스케일이 큰 사회이론이었고, 제1세계와 제2세계의 체제 경쟁을 냉전이라 일컬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던 해 등장한 것 또한 WWW, 월드 와이드 웹이다. 오프라인의 벽을 허물고 온라인의 그물로 세계를 엮어낸 것이다. 20세기는 그야말로 세계가 천하를 석권한 100년이었다.
돌연 ‘지구의 날’(EARTH DAY)이 선포된 것이 꼬박 반세기 전, 1970년 4월 22일이다. 냉전의 뜻하지 않은 결과였다. 미/소 간 우주경쟁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천하를 넘어 천상을 뚫고 지구 밖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지구 밖에서 지구를 처음 보게 된 것이 1960년대 후반이다. 달에서 지구가 떠오르는 지구돋이(Earthrise)도 관찰하게 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의식이 생긴다고 하던가. 우주에서 지구를 목도하게 되면서 인류는 비로소 '지구의식'을 장착하게 되었다. 물질개벽의 쾌거로 정신개벽의 도약을 이룬 셈이다.
2020년. 나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과 이후를 가늠하는 잣대가 '지구/Earth'라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지구로 이행하고 있다. 세계는 여전히 인간 중심적인 발상이다. 사람이 만든 국가 단위로 세계를 상상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계 속 지위를 높이고자 국가별로 경쟁한다. 너와 나를 가르는 분별심의 근간에 나라가 자리한다. 그러나 지구는 인간 너머의 존재이다. 인간 이전의 자연물을 모두 포함한다. 광물과 식물과 동물은 물론이요 미물까지도 지구를 구성하는 주역이고 주체이다. 나아가 인간 이후의 사물들, 인공물까지 아우른다. 응당 국가별 경쟁일랑 지구는 그저 무심할 뿐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깨끗해진 지구의 풍경을, NASA의 인공위성과 구글 어스를 통해 관찰할 수 있는 오늘을 살아간다. 종종 유튜브에서 NASA나 구글 어스의 라이브 스트리밍을 감상할 때가 있다. 대지와 대기와 대양이 거대하고 거룩하게 운동할 뿐, 작위적 국경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눈 뜨고 몰입하는 21세기형 온라인 명상에 가깝다.
2020년 지구의 날 50주년은 각자의 집(Home)에서 우리 모두의 터전인 지구(Home)를 축복했다. 고로 나라와 나라 사이, 셧다운은 일면적이다. 물리적 국경은 닫혔으되, 웹과 앱으로 오픈업, 지구인으로서 공속감(EARTHSHIP)를 더욱 강화했던 것이다. 만인과는 우정(friendship)을 나누고, 만물과는 친밀(fellowship)를 다지는 생명문명의 미래가 언뜻 스치듯 보였다.
2. 춘천 가는 길
K-뉴딜, 2021년을 준비하며 정부에서는 크게 세 방향의 흐름이 강조되고 있다. 디지털, 그린, 로컬이다. 온택트,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이 빨라지고 있고, 생태적 가치를 강조하는 정책과 산업이 모색되고 있으며, 지역에서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실험도 다채롭게 변주되고 있다. 셋을 하나로 엮으면 바로 ‘생명 문명’이 아닐까. 다만 21세기의 생명문명은 자연으로의 회귀만도 아닐 것이다. 생태근본주의가 해답일 수 없다. 그렇다고 첨단기술의 일방적 질주 또한 아닐 터이다. 기술만능주의 역시 정답일 리가 없다. 자연선택의 소산인 生物(생물)과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된 인공물, ‘活物’(활물)과 더불어 사람의 생각과 생활도 공진화하는 만물의 그물이 펼쳐진다. 생명을 닮은 문명, 문명을 탑재한 생명이 상호진화하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문명이 새로운 일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한 미래문명을 상상하기에 안성맞춤한 장소가 춘천이다. 산과 강과 호수 등 아름다운 자연(green)을 뽐내고 있으며,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smart)를 세 곳이나 확보한 강원도의 으뜸 도시(local)이다. 동물과 식물과 사물이 인물과 함께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 실험의 최전선이 될 수 있다.
2020년에서 2021년으로 가는 길, 산업문명의 끝물에서 생명문명의 물꼬를 트는 봄길, 역병의 역습에서 치유와 회복으로 가는 꽃길. 우연처럼 운명처럼 봄내 춘천과 인연을 맺었다. 춘천에서 생명문명의 봄을 마중하는 열두 편의 글을 차례로 싣는다. 생명에 대한 새로운 생각, 생명을 모시는 새로운 생활,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생산 등, ‘생명을 생각하는 생활을 생산하는’ 봄내의 내일을 그려본다.
출처 | 출처 춘천 시정지 "봄내" 1월호 | 20.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