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문명 2.0으로 가는 길


1. EARTH 4.0

 

 올해로 4년차를 맞이하는 한국생태문명회의에 참여하게 되어서 더없는 영광입니다. 공교롭게도 2020년 올해는 “지구의 날”(4.22) 5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또 코로나 사태로 전 지구적인 생태적인 각성을 촉발한 원년으로 기억될 해이기도 합니다. 비대면 거리두기가 개인과 개인은 물론이요,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면적으로 시행되면서 각종 행사들이 온라인 컨퍼런스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구사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 있음을 실감나게 해주는 장면들입니다. 오프라인에서의 자연적 거리두기와 온라인에서의 인공적 거리 메우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미생물, 바이러스의 경고로 각성한 전 세계의 지구인들이 디지털 연결망을 통하여 공동의 지혜를 모으고 공통의 미래를 탐구하고 있는 2020년의 풍경이 흥미롭습니다. 생태문명의 미래를 전망하는 오늘 회의 또한 그 전 지구적 파노라마의 하나일 것입니다. 

 저는 EARTH+라고 하는 NGO의 대표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지구의 날” 50주년을 기념하여 창립파티를 열려고 했으나,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제대로 된 출발조차 여의치 않게 된 신생 단체입니다. EARTH+는 생명을 생각하는 생활을 생산하는 지구세대의 라이프스타일 실험실을 표방합니다. 민족과 국가보다는 지구와의 공속감을 제1의 정체성으로 삼는 “Earthship”을 배양하려고 합니다. 그러함에도 기왕의 생태운동과도 일선을 긋습니다. DIGITAL, DNA, DATA, 3D혁명이 촉발하고 있는 미래의 물결에도 적극 타고 오르려고 합니다. 비유하자면 21세기형 생태문명 2.0을 모색합니다. 

 저희는 현재의 지구가 과거의 지구와는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전환기적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가 지구의 4번째 단계에 진입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EARTH 1.0은 빅뱅 이후 지구의 탄생까지를 말합니다. 그 우주의 물질적 진화의 끝에서 지구라는 행성에는 생명이라는 환상적 인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구의 두 번째 단계 EARTH 2.0입니다. 다양한 생명체들이 폭발적으로 진화하여 수많은 식물과 동물과 미물이 지상과 천상과 해상에 번성하게 됩니다. 그 파란만장하면서도 찬란하기 그지없는 생명 진화의 대서사 속에서 불현듯 “생각하는 생명”도 탄생합니다. 호모 사피엔스, 인류의 등장입니다. 첫 번째 생각의 탄생이었다고 과장할 것은 없겠습니다. 그러나 생각의 수준이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도약했음만은 분명한 사태라 하겠습니다. 이 놀라운 생물체는 이성을 활용하고 지성을 발휘하여 기어이 EARTH 1.0과 2.0, 그리고 EARTH 3.0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수립해 내었기 때문입니다. 우주와 지구와 생명에 대한 자의식, 자기인식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지구사의 일대 터닝포인트 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인간들의 발명과 창조로 인공적인 사물들을 만들어내더니, 끝끝내는 인공적인 생각도 작동시키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지구 밖 우주에는 수많은 인공위성들이 지구 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지구 안에서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킨 인터넷 시대를 지나, 5G와 6G를 통하여, 사람과 사물과 사건이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근미래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라 간주되었던 인지와 판단 등 생각의 힘을 사물들에게도 부여하고, 그 만물의 연결망을 통하여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이 합류하는 ‘생각하는 지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100년 전 사물에 동력을 부여하여 ‘자동의 시대’를 열었다면, 앞으로 100년은 사물에 지력을 장착하여 ‘자율의 시대’, ‘신 자연의 시대’를 개창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처럼 드론이 오고 가고, 바람처럼 차들이 왔다 가며, 나무처럼 집은 숨을 쉬고, 숲처럼 도시는 진화하게 됩니다.

 고로 당장 자동차부터가 더 이상 기계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도로상태만이 아니라 기후상태까지 지상과 천상을 아울러 사유하게 됩니다. 자율차 뿐이겠습니까. 기차와 배, 비행기 등 모든 모빌리티 수단은 죄다 인공지능을 탑재하여 인간의 이성을 능가하는 역량을 발휘할 시기가 10년 안쪽으로 열립니다. 정착해서 살아가는 집은 ‘인공식물’이요, 이동할 때 활용하는 교통수단은 ‘인공동물’이 되어, 사람이 살아가는 시공간 전체가 인간과 실시간으로 전 지구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신세기와 신세계가 곧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일순부터 일생까지 천지인은 숙명처럼 연결되고 결합하게 됩니다. 고로 이미 생명이 아닌 존재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미물은 물론이요 철물과 폐물까지 알고리즘을 장착하여 나름의 ‘진화’를 수행하게 됩니다. 만인과 만물이 공진화하는 천지공사(天地公事)의 후천개벽이 리얼하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우주사의 거대한 티핑포인트, 137억 년 전 빅뱅에 빗대어 ‘딥 뱅’(Deep Bang)이라고 불러주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통합되고,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는 융합되면서, 인위와 무위의 경계는 흐릿해지고, 자연과 자유와 자동과 자각이 무한의 피드백을 거듭합니다. 즉 인간이 우주와 지구와 생명과 만물의 진화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들어가는 ‘인공지구’(Artificial Earth)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인류가 살아가는 생태계 또한 자연선택의 소산으로 빚어진 기왕의 지구환경에 인류의 의식적 선택으로 만들어낸 인공생태계가 합류하고 있다고 봄이 더 적절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미래의 생태문명 구상 또한 인공지구의 현실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감각을 벼리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생태문명”이라 함은 산업혁명의 대척점에 놓여 있었습니다. 산업문명과 생태문명을 물과 기름으로 나눈 것입니다. 최대한 기술을 배제하고 자연과 인간의 합일만을 높게 쳐왔습니다. 인간의 삶을 최대한 자연 쪽으로 밀착시키는 것이 유일한 대안처럼 강구해 왔습니다. 그간 한국생태문명회의 역시도 신학과 철학과 법학 등 인문학적 지향이 강조되는 반면으로 과학과 공학과 기술과는 어쩐지 멀찍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EARTH 3.0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복고적 담론과 회고적 실천만으로는 백척간두의 지구적 위기를 온전히 감당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적어도 앞으로30년, 더 많은 사람들이 지구상에 태어날 것이고, 그 폭발하는 인구의 대다수가 도시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점이 대다수의 미래학자들이 동의하는 메가트렌드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미래형 생태문명 전략 또한 ‘오래된 미래’보다는 ‘깊은 미래’로의 대전환을 꾀하는 편이 실질적이라 하겠습니다. EARTH 4.0, "제4차 지구"라는 지구사적 단계를 직시하고,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불가피한 인류사적 물결과 합류해가는 미래형 생태문명을 상상하고 현실로 구현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생산과 소비와 유통을 망라하여 살림살이의 전반을 관장하는 산업과 기술의 대전환이 필수적입니다. 관념적인 말과 글이나 관성적인 운동 방식으로 원론과 당위론을 설파하며 설득하고 설복시키기보다는, 생명의 본질인 창발성과 생동하는 활기를 십분 활용하여 창의적인 기술개발과 창조적인 산업생태계 조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EARTH+는 생명이라는 가치를 화두로 삼아,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생산이 만나고 모이고 섞이는 생생활활한 플랫폼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2. 생태문명 2.0 

 

 이웃나라 중국에서 400조를 쏟아 부어 만들고자 하는 슝안(雄安)신구는 말 그대로 유기체처럼 “살아 숨쉬는” 지혜도시로 디자인했습니다. 당헌에 ‘생태문명건설’을 삽입한 세계 최대의 정치집단인 중국공산당이 무위자연에 인위자율을 결합하여 생태문명 2.0에 전력투구 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2018년에는 세계 자본가들의 아성이라고 할 수 있는 다보스포럼에서도 “생물학적 세기”(Biological Century)를 선포했습니다. 생태와 생명이 도처에서 모두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공산당과 다보스포럼이 공히 미래형 생태문명을 탐색하는 판국에, 더 이상 산업문명 시대의 균열선, 자본가와 노동자,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라는 등식은 통하지가 않습니다. 즉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 밀레니얼 세대를 막론하여 전 세대가 협력해야 하고, 남녀노소, 진보/보수를 망라하여 전 세력이 협동해야 하며, 동양과 서양, 남반구와 북반구를 아울러 전 세계가 협업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환을 위한 스타트업>이라는 독특한 섹션도 마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생각하는 생활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생활만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도 반드시 결합되어야 합니다. 기술과 금융과 경영 등 산업혁명의 첨단을 달렸던 영역이 생태문명의 가치 아래 융합되고 통합되어야 합니다. 회복과 치유라는 되돌림의 애씀만큼이나 창업과 창조라는 미래의 기획력이 투트랙이 되어 쌍순환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돈이 돌고 돌면서 생명의 기운을 북돋으면서도 그 종자돈이 더더욱 불어나서 더 큰 생명산업으로 재투입되는 선순환의 기술적 고리를 창안해야 하는 것입니다. 땅과 산과 강과 바다와 하늘을 되살리고, 동물과 식물과 미물이 공존하고 공생하는 지구 공동체의 회생이라는 ‘위대한 과업’을 온 마음과 온 몸을 다하여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인공적인 기술과 사물과도 공진화하는 생태운동의 업그레이드와 업데이트가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신 세 분의 연사들은 생태문명을 지향하는 생명살림산업의 최전선에 계신 분들입니다. 지역의 주민자치와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미래 가치를 금융 혁신과 결부시키기도 하고, 산업혁명의 부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쓰레기 문제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도 했으며, 버섯의 균사체라는 독특한 물질을 통하여 우리의 의식주를 전환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도 창안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실험에 주목해 주시고 성원해 주시고, 또 함께해 주신다면 한국의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에 더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더 많은 스타트업과 더 다양한 생명살림기업들이 생태문명회의에 동참하여서 생태문명 2.0, 미래형 생태문명으로의 진화에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출처 |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회의 '전환을 위한 스타트업' 섹션 기조발제문 | 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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