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시티

GO OUT  


봄봄봄. 봄이 왔다. 봄맞이로 겨울 내 창고에 방치해두었던 자전거를 꺼내었다.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바퀴에는 공기를 가득 채우고 녹슨 체인에는 기름칠을 했다. 봄으로 가는 길목, 주저 없이 향한 곳은 봄내이다. 송파에서 100km 남짓, 다섯 시간을 내리 달리었다. 강줄기부터 산세까지 강원도의 천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풍경은 일품이고, 매끈하게 정리된 자전거 전용도로는 명품이다. 목적지로 찍은 곳은 스퀴즈 브루어리였다. 춘천의 맑고 깨끗한 물로 만든 로컬 비어의 맛에 흠뻑 빠져 있다. 먼저 청량한 ‘소양강 에일’로 목을 축인다. 갈증이 싹 가신다. 다음은 은은한 커피향에 바디감이 풍부한 스타우트 흑맥주이다. 의암호 지척의 카페를 찾아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발간하는 <East> 1호와 2호를 읽었다. ‘강원도 밀레니얼 창업자를 담은 로컬매거진’이라는 표제부터 마음에 쏙 든다. 흠뻑 흘린 땀으로 노곤해진 몸에 따스한 봄 햇살이 내리쬐자 까무룩 기분 좋게 졸음도 밀려온다.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주말여행이 있을까 싶다. 흐드러지게 꽃이 피고 훨훨 나비가 나는 봄이 깊어질수록 더 자주 자전거를 타고 춘천에 이를 것이다.   

 호접몽, 나비의 꿈을 꾸어본다. 포스트-코로나, 더 이상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살 이유가 없다. 온-택트(On-tact), 비대면 소통과 재택근무가 뉴노멀이 되었다. AI 시대, 이제 인간은 근력노동에 이어 정신노동에서도 상당 부분 해방될 것이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일거리와 놀거리가 점점 별개가 아니게 된다. 노동의 해방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주 4일 근무가 일반화될 것이다. 아니, 일하는 요일과 시간과 장소까지도 자유롭게 선택하는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될 것이다. 일은 갈수록 ‘Labor’나 ‘Work’라기 보다는 ‘Play’에 더 가까워진다. 백세인생, 평생 잘 놀거리를 진지하게 궁리할 일이다. 그럴수록 강원살이와 춘천놀이는 더더욱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저 북방 연해주와 동시베리아, 러시아인들의 다차(Dacha) 문화를 참조해 볼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이들의 거의 대부분이 시골에 다차를 보유하고 있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러시아 특유의 풍토 때문에 국가가 앞장서 저렴한 가격에 토지와 다차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덕분에 최소한 주말만이라도 자연 속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가 있다. 일 년에 서너 달 휴가를 누리기도 한다. 서울 및 수도권의 지자체와 춘천시 사이의 전략적 협력도 도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춘천의 면적은 서울의 2배 남짓이다. 저 푸르고 품이 너른 산맥의 일정한 땅을 임대하여 농막이나 움막을 짓고 주말농장을 하거나 실컷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즐기다 돌아갈 수 있다. 아니 장기적으로 보자면 수도권과 강원도의 위상이 역전될 수도 있다. 주 2-3일만 서울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일을 본다. 주 4-5일은 강원도의 산과 강과 호수와 바다 가까이 지낸다. 너 죽고 나 살자, 정치혁명이나 계급혁명이 아니다. 라이프스타일 혁명이다. 나도 살리고 내 이웃도 살리고 뭇 생명도 살리는 생활의 혁명이다. 


포틀랜드와 춘천  


자연에는 미래가 없다. 영겁의 순환이 있을 뿐이다. 미래는 지극히 인간적인 시간 개념이다. 고로 가만히 앉아서는 미래가 오지 않는다. 과거가 영구히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적극 만들어가야 한다. 가뿐히 몸을 움직이고 부지런히 손발을 놀려야 한다. 저 멀리 그 유명한 포틀랜드를 참조해 볼 수도 있겠다. 미국을 상징하는 아웃도어의 본고장이다. 풍요로운 자연과 창조적인 도시의 삶이 공존하는 근사한 공간이다.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금세 산과 들과 바다와 호수가 펼쳐지는 대자연과 마주한다. 포틀랜드 사람들은 프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기보다는 직접 경기를 뛰고 싶어 한다. 본디 그러했던 것만도 아니다. 50년 전 포틀랜드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따분한 도시였다. 변화의 기폭제는 다시금 생활로부터 비롯되었다. 자전거와 함께 일상의 혁명이 시작되었다.  

 포틀랜드 시내에는 자전거 도로가 그물망처럼 엮여 있다. 자전거로 통근하는 시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이다. 자연스레 관련 시장도 발달되었다. 자전거 공방이 들어서고 자전거 디자인 산업도 활황이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명성이 아니다. 시정부의 꾸준한 노력이 근간이 되었다. 다른 도시들이 더 많은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포틀랜드는 자전거 활성화를 위한 시설 확충을 위해 투자했다. 자전거 타기를 즐겁고 신나게 유도하는 정책 설계도 돋보였다. 매년 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한 달 동안 자전거로 출퇴근한 경로를 기록해 가장 많은 거리를 통근한 시민과 회사에 상을 수여하는 것이다. 또 언제든 지하철과 버스에 실어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해 두었다. 가장 큰 매력은 무료로 이용하는 대중교통이다. 시가 운영하는 공영버스가 만년 적자라고는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매년 창출하고 있다. 가장 친환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구가하는 도시로, 사람들이 살아보고 싶은 도시에서 늘 첫손에 꼽힌다. 60만 중소도시가 뉴욕이나 LA 같은 메트로폴리탄 못지않은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게 된 것이다.   

 백미는 아웃도어 기업도 자리한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본사가 바로 포틀랜드에 있다. 자전거 공유 시스템인 바이크타운도 시정부와 나이키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도심 구석구석에 설치된 전용 스테이션에 1,000여 대의 오렌지색 자전거가 비치되어 있다. 교통국의 웹와 앱은 자전거 위치와 수리 센터, 사이클링 루트 등이 표시된 지도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스마트 기술과도 접목되고 있다. 사용자가 어떤 루트를 이용하는지 데이터를 분석해 활용도와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태양열과 페달을 밟을 때 발생하는 에너지로 충전하는 전기 자전거도 등장했다. 시정부와 글로벌 아웃도어 기업, 그리고 주민들이 어울어져 미래형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하는 최전선이 된 것이다.  

 지도를 활짝 펼쳐 춘천의 위치를 다시금 살펴본다. 서울과 동해 사이, 한복판에 자리한다. 수도권은 너무 복닥거리고, 동해안은 다소 멀찍하다. 딱 중간에 위치한 춘천이 라이프스타일 실험의 허브로 적격이다. 주변은 온통 산이요 물이니, 워킹과 러닝, 등산과 마운틴 바이크, 하이킹과 캠핑, 스키와 서핑, 카약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한 액티비티를 경험할 수 있다. 블랙야크나 삼천리 등과 전략적인 제휴를 맺고 춘천시를 아웃도어 시티로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금 춘천에는 데이터센터도 여럿 있는 고로, 시민들의 야외 활동 자체를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기본소득과 그린 라이프의 결합, 푸르른 ‘녹색소득’의 상상력은 계절의 여왕 5월에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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