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雲)과 클라우드(Cloud)

1. 눈(雪), 눈(目), 눈(lens) 


입춘대설(立春大雪). 


성큼 봄으로 가는 길, 펑펑 큰 눈이 내렸다. 서서히 나리어, 조용히 쌓이고, 하얗게 덮으니, 온통 아리따웁다. 춘천은 설경도 일품이었다. 그 유명한 <겨울연가>가 괜히 춘천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 아닌 모양이다. 봄내 가는 기차도 순식간에 설국열차가 되었다. 의암호 물레길에서는 눈사람을 만들고, 애니메이션 박물관에서는 눈싸움을 하였다. 삼악산에 눈 내리는 풍경만으로도 눈이 시리건만, 렌즈의 힘을 빌려 눈꽃을 관찰해도 눈물겹게 아름답다. 눈 결정은 육각형이다. 꽃잎 6장이 달린 것 같다하여 ‘육화’(六花)라고도 부른다. 봄꽃을 마중하는 눈꽃을 실컷 감상한 춘천의 입춘이었다.   

그러고 보면 춘천(春川)은 물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름에서부터 내 천(川)자를 깊이 새기어 두었다. 북한강과 홍천강이 합수하는 곳, 수량이 원체 풍부한 땅이다. 지상의 넘치는 물과 천상의 깨끗한 공기가 만나 빚어내는 천지조화가 바로 구름이다. 기체면 수증기요, 액체면 물이며, 고체이면 얼음이라 일컫는 자연의 가장 거대한 순환 속에서 구름은 기체와 액체와 고체 사이 절묘한 균형으로 생멸을 거듭한다. 천상과 지상의 조건에 따라 천태만상의 꼴로 변장하고, 대류권의 흐름에 따라 이러 저리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흘러 다닌다. 하늘로 올라가는 수증기와 땅으로 내려가는 비와 눈 사이, 구름은 천상의 강(天川)이라고도 할 수 있다. 

헌데 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도 더 이상은 인간의 손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행기가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비행운이 대표적이다. 바다를 가르는 배에서 배출된 배기가스가 응결핵이 되어 항적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자동차나 공장의 온실가스 또한 에어로졸(Aerosol)이 되어 인간이 만든 구름, 인공구름을 형성한다. 이른바 인류세, 인간이 구름을 만들어내는 시대이다. 우리가 곧 구름이고, 우리가 즉 날씨이다.  

구름은 늘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헌데 이제는 내려다보기도 한다. 천외유천(天外有天), 인간은 하늘 밖 하늘로 인공위성을 쏘아 보냈다. 지구 밖 위성카메라로 지구 안 구름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종종 NASA의 유튜브 라이브에 접속해 대기와 대양과 대지의 운동을 바라본다. 해상도는 점점 높아져 구름결 하나하나 섬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햇빛을 반사하는 바다와 호수의 빛나는 풍경도 목도할 수 있다. 춘천의 구름이 굽이굽이 대관령을 타고너머 동해를 지나 태평양에서 사라지는 수증기 애니메이션을 추적할 수도 있으며, 작년 입춘의 춘천 하늘은 어떠했는가도 빅데이터에서 검색해볼 수도 있다. 자연적 구름과 자율적 클라우드 사이를 오고가며 디지털 명상에 빠져있는 나를 문득 자각하노라면, 물구름 수운(水雲) 선생의 말씀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니련가.”가 절로 떠오르곤 한다.  


자연, 자동, 자율  


무궁한 저 우주마저도 내 손 안으로 손쉽게 담아내는 모바일 온택트(On-tact)사회, 새로운 삶의 중심에 클라우드(Cloud)가 있다. AI, IoT, AR, VR, 자율주행, 블록체인 등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폭설처럼 쏟아지는 IT 신기술들이 모두 인공구름, 클라우드 안에서 움직인다. 하늘의 수증기와 땅의 물 사이를 매개하는 대순환의 중간 거점이 구름인 것처럼, 디지털 구름 클라우드는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의 소통을 매개하는 블랙홀이 되어간다. 더 이상 내가 가진 파일이나 콘텐츠를 물성을 가진 매체로 저장하고 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소프트웨어를 비롯해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도 이제는 클라우드에서 빌려 쓸 수 있다. 클라우드는 우리 모두가 원하는 자원을 필요한 만큼 꺼내 쓰고, 그 자원을 구름처럼 자유자재로 모양과 크기를 바꿀 수 있는 인공생태계를 제공해주었다. 앞으로 등장할 미래의 핵심기술 또한 클라우드에 이미 ‘대기’ 중이라고 하겠다. 구름의 모양과 이동을 보면서 날씨를 예측했던 것처럼, 이제는 클라우드에 기반한 빅데이터를 통하여 미래를 예지하고 예언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뭉게구름이 먹구름이 되면 비가 쏟아지듯, 빅데이터가 쌓이고 모이면 딥데이터로 진화한다. 넓이에서 한층 더 나아가 깊이를 확보하게 된다. 마이크로트렌드의 추적과 메가트렌드의 포착은 물론이요 메타트렌드까지 꿰뚫는 인사이트 너머 포어사이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개개별의 이성과 지성을 넘어서 차원을 달리는 메타이성, 심층지성을 장착하게 된다. 다음세계의 기운과 다음문명의 기세를 미리 감지하는 심연(Deep Eyes)을 구축하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를 디지털시대의 금광이라 일컫는 까닭이라고도 하겠다. 공교롭게도 춘천은 20세기 산업화시대, 인공댐을 만들어 자동화 시대의 핵심 자원인 전기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보급했다면, 21세기 디지털시대에는 데이터댐을 통하여 자율화 시대의 핵심 자산인 딥데이터를 형성하고 딥인텔리젠스를 제공하게 된다. 

 디지털 신경망과 연결된 사물들은 활물(活物, Autonomous Things)로 진화하고, 생물과 활물과 인물 사이의 전례 없는 인공생태계는 딥마인드의 딥러닝을 초가속화시켜 지구를 하나의 딥브레인(Deep Brain)으로 밀고간다. 19세기 이전의 자연과 20세기의 자동과 21세기의 자율이 융복합하여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인공자율을 구별 지을 수 없는 자타불이(自他不二)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새로운 지구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미 달에서도 5G가 터져 사진을 전송하고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사라지고, 지구의 안과 밖도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다행성(Multi-Planets) 시대의 천지개벽, 후천개벽이 실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새로운 미래 환경 속에서 20세기형 살림살이는 급속도로 사라질 것이다. 교육과 직장을 위해 서울로 수도권으로 사람들이 몰렸던 일극 중심 발전 모델도 조만간 종언을 고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더 이상 ‘오피스 365’라는 이름을 쓰지 않음이 상징적이다. 더 이상 오피스는 물리적 공간에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클라우드를 통하여 여기저기 도처에 존재한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뜬구름처럼 이곳저곳을 자유로이 탐색하며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근미래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것이다. “한달 살이” 바람이 부는 가운데 유독 ‘강원 살이’가 붐을 일으키는 이유이다. 산과 강과 바다를 품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디지털 문명 속에서 더더욱 각광을 받게 된다.

 고로 춘천은 수도권과 강원도를 잇는 허브도시가 될 것이다. 자연과 자동과 자율을 잇는 자생적이고 자각적인 도시로 진화해 갈 수 있다.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삶을 선도적으로 실험하는 전위들의 아성이자 아지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생명문명 미래도시, 생물과 활물과 공생하는 지혜도시, Spring Spirit City, 눈 내리는 춘천에서 봄내의 새봄을 예감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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