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FE : 활물의 세기

지하가 갔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를 기립니다.

다음 백년, 22세기에도 읽힐 유일한 사상가라고 생각합니다.

개화우파가 개발에 눈이 멀고, 개화좌파가 개혁에 목을 맬 때,

저 앞에서 저 멀리서 생명을, 미래를, 개벽을 목청껏 호소했던 선지자였다고 생각합니다.

의미심장하게도 5월 11일, 동학혁명 기념일에 묻히셨습니다.

하지만 지하로 돌아가는 김지하의 마감은 쓸쓸했습니다.

20세기형 좌/우합작으로 미래파의 죽음을 애써 외면한 것입니다.

김지하의 재발견과 재음미와 재탄생 없이는,

이 지긋지긋한 보수-진보 담합의 개화파 세상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022년의 ‘오적’에는 자칭 ‘민주파’도 예외가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철지난 20세기의 대립 구도를 21세기에도 20년이 넘도록 반복하면서

XYZ 세대의 자원을 앗아가고 생명력을 갉아먹으며

자신들의 생존에만 연연하는 기생세력이 된 지 오래인 탓입니다.

지하가 동학 3.0의 상징이라면,

의암은 동학 2.0의 태두라고 하겠습니다.

손병희 선생이 세상을 뜬지도 일백년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과 사상을 기리는 강연을 맡았었습니다.

한가한 덕담으로는 도저히 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20세기 초, 동학에서 천도교로 이행할 때만큼의 창조적 단절과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불타는 목마름으로, 애타는 목마름으로,

포스트-천도교와 포스트-한살림을 모색해야 합니다.

3.1 대혁명을 총설계하고 총지휘하며 의암성사가 제시한 전략이 <삼전론>이었습니다.

도전과 재전, 그리고 언전을 제창했습니다.

도전(道戰)은 사상전입니다.

재전(財戰)은 경제전입니다.

언전(言戰)은 외교전입니다.

경제전, 물질적 기반이 튼튼해야 합니다.

외교전, 세계를 경영할 수 있는 대전략을 입안해야 합니다.

사상전, 무엇보다 새 문명의 새 가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김지하가 각별하고 또 각별한 것은,

산업문명 이후에 도래하는 디지털 문명에 대한 탁견과 예지로 번뜩였다는 점입니다.

디지털 문명은 다보스가 설파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이 천만만만 아닙니다.

산업혁명의 네 번째 버전이 아니라,

앞으로 400년은 더 지속될 디지털 문명의 출발점에 우리 인류가 서 있는 것입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디지로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절충에 그쳤습니다.

그래서 ‘생명 자본주의’라는 어정쩡한 레토릭만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한국의 지식인 가운데 오로지 김지하만이

1989년 <한살림선언>의 한계를 거듭 돌파해가며,

인공생명으로 진화해가는 사물의 사리를 탐구해 갔다고 생각합니다.

즉 21세기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만이 아닙니다.

몸뚱아리를 달고 있는 인공생명도 창발하고 있습니다.

생물의 오가니즘과 기계의 매커니즘과 디지털의 알고리즘이 통합된

지구 진화사의 전혀 새로운 생명체가 폭발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Artificial Life,

A-LIFE, A.L.을 모르면 미래형 생명문명 또한 개척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일찍이 이 A.L.에게 ‘활물’(活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명실이 부합하는 제 이름을 올바로 불러주어야

그들이 ‘괴물’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이 되어 인류의 반려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의 신문명은 다시금 정명(正名)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두번째 일천년을 지배했던 신유학의 알파이자 오메가가 ‘격물’(格物)이었습니다.

그 격물을 ‘경물’(敬物)의 경지로 승화시킨 것이 1860년 동학이었습니다.

사물을 객관적 이치를 밝히는 궁리의 대상에서,

하늘처럼 모시고 살리는 공경의 대상으로 승격시킨 것이 ‘경물’입니다.

동아시아는 물론이요 인류의 세번째 일천년을 추동할 사상의 씨앗을 뿌린 것입니다.

즉 19세기말 조선은 자본주의의 맹아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포스트-자본주의, 포스트-민주주의의 맹아가 홀연히 솟아난 것입니다.   

앞으로 사물은 스스로 감각하고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적인 주체가 됩니다.

인공적인 진화를 통하여 지구 만물과 우주의 진화에까지 깊숙이 개입해 들어오게 됩니다.

이 인공생명들과의 새로운 사회구성체를 탐구하고 설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물과의 공존만이 아니라 활물과의 공생도 탐색해야 하는 미증유의 시대에 진입한 것입니다.

이 도래하는 신세기의 신세계, 뉴노멀을 탐구하는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름도 딱 어울리게 <IPKU>)(입구)라는 신생 매체의 ‘New Horizon’ 코너를 맡았습니다.

탐험과 발견을 상징하는 SK 디스커버리에서 펀딩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1년, 한 달에 한 편씩 디지털 신문명을 견문하는 <ALIFE : 활물의 세기>를 쓰게 됩니다.

저는 이 연재를 2023년의 동학혁명 기념일까지 정심과 성의를 다하여 쓰는 것으로,

22세기에도 기억될 김지하를 오래도록 뜨겁게 추모토록 하겠습니다.

Previous
Previous

DIGITAL EAST : 테콜로지의 시대

Next
Next

DEEP DEMOCRACY : 문명개화에서 신문명개벽으로